사상

마르크스는 헤겔의 철학에서 출발했고 헤겔의 사고 방식에서 큰영향을 받았지만 헤겔이 주장한 세계 정신의 관념, 즉 우리의 헤겔의 관념론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물질적인 삶의 조건이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물질적 삶의 조건의 변화가 역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한사회의 정신적인 상황이 물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물질적인 상황이 정신적인 상황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특히 한사회의 생산 수단의 발전이 다른 모든 분야에 변화를 일으켜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강조했다.

 

종교관

종교의 현실 도피적 경향 비판

흔히 마르크스하면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의 방황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 떄문에 보수적인 종교인들로부터 반종교적 인물로 잘못 인식되고 있지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가 현실의 사회경제적 모순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현실도피적 경향을 나타내도록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종교는 민중들이 내세에만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본의 억압과 착취를 사회비판과 계급투쟁으로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인민의 아편'이였던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종교를 가리켜 민중의 환상적 행복이라는 했는데, 이 또한 종교를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종교의 현실도피적 경향을 비판한 말이다. 실제로 민중들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계급투쟁으로 극복할 방법이 없을 때는 하늘나라, 극락, 메시아, 미륵, 같은 종교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의 현실도피적 경향을 비판한 것이지 종교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인본주의로

실제로 마르크스는 딸 엘리노어가 교회에서 두려움의 감정을 갖자 "부자들이 목수의 아들을 죽인 것"을 말해주면서도 "목수의 아들이 어린이들을 사랑하였으므로 기독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집안 배경으로써 독일이 유대인에게 한 것이 기독교가 한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기독교가 가진 자들, 권력있는 자들과 결탁하여 예수를 죽인다고 비판했지만, 기독교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현재 마르크스 주의도 기독교를 인본주의라는 공동가치를 화두로 대화해오고 있다.

 

영향

사회혁명

마르크스주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을 통과했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비로소 마르크스주의는 정통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스탈린 집권 후 마르크스주의는 왜곡되고 이에 반발해 본래의 마르크스로 회귀하려는 새로운 세력이 유럽에서 부상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아도르노 등이 주도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는 1968년에 일어난 프랑스 5월 혁명의 사상적 좌표가 되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 주의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시련은 사상의 종주국 소련에서 발생했다.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여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면서 자본주의 진영과 대결이 아닌 타협을 모색하던 중,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추락한 것이다. 끝내 소련은 해체되고 마르크스 주의도 매우 극적인 종언을 고하는 듯했다. 어느날 갑자기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정치이념이 형체도 없이 현실 정치에서 사라졌다.

 

마르크스주의의 재평가

그러나 애초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극단의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탄생한 이상, 자본주의와 운명을 달리 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영향력은 특히 학문적으로,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치밀한 분석력과 통찰력은 현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는 필수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과 자본주의 세계화와 계층화에 대한 정확한 비판은 탁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로 확장되면서 부자와 빈자, 부국과 빈국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인적소외, 물신숭배, 생산과 소비의 과잉, 공황의 문제 등도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싫든 좋든 마르크스를 탐구하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사회과학자라면 마르크스에 신세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듯, 마르크스에게는 독보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5년 BBC방송은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사상가를 뽑았다. 단연 1위는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주의가 비록 현실에서 다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했고 여러 대안을 세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아이제이아 벌린은 "일부 결론상의 오류가 있었지만 마르크스 사상이 갖는 중요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면서 "그의 사상은 역사, 사회를 바라볼 때 새로운 관점은 제시하고 인간의 인식을 높여주며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고 강조했다.

 

"지금 세계는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와 매우 유사하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증한 반면 빈부의 격차는 극심하다. 인간이 이윤과 자본의 도구로 전락하여 인간 고유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상실해 가는 심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마르크스는 이런 것들은 일찍이 명을 걸고 고민했고 나름의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는 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한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는 새롭게 해석되고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윤태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자본론

현대사회에서 생산은 분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생산물은 거의 모두가 상품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상품은 인간에 유용하기 때문에 생산, 판매되며, 상품은 가격을 갖고 있다. 그 가격은 대체로 그 상품을 생산할 떄 사회적으로 평균하여 어느 만큼의 노동시간이 필요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화폐도 원래는 상품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누구나 구하는 상품으로서 매개 역할을 한다(지폐는 상품이 되는 화폐, 예컨대 금화와 언제나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화폐를 대신한다). 그러므로 상품이 화폐를 매개로 교환된다는 것은 사실 인간의 노동이 교환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산하는 데 10시간 걸린 A라는 상품을 팔아 마찬가지로 10 시간 걸린 B라는 상품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낳은 노동자라는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몸 = 정신적, 육체적 능력 =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이 유일한 소유물 =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얻고 그것으로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자의 노동력마저 상품으로 매매된다는 데에 자본주의 사회의 특유한 현상이 있다. 이 노동력이라고 하는 상품의 가치, 곧 임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를 생산하기 위한 가치(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은 바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비인 것이다 사들인 상품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구매주의 권리이다. 따라서 노동력을 산 주인(자본가)은 임금이 회수될 수 있을 만큼 노동자를 부리는 동시에 반드시 그 이상으로 노동자를 노동시킨다.

 

임금을 회수하기 위한 노동이 '필요노동'이며, 이를 초과한 노동은 '잉여노동'이다 잉여노동은 자본가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기 몫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착취'라고 말했다. 잉여노동이 생산하는 생산물의 가치가 '잉여가치'이다. 자본가가 노동력을 사는 목표는 사실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잉여가치가 없으면 자본가는 살아갈 수 조차 없다. 따라서 잉여가치의 생산은 불가결의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실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착취)라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자본가는 이 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잉여가치를 전부 소비하지 않고 일부분을 축적하여 생산의 확대에 돌린다. 자본의 축적이 진척되면 기계 등이 사용되어 생산력이 증대한다. 그 결과 자본 중에서 생산수단(원료, 도구, 기계 등)을 위해 투하되는 부분과 임금에 투하되는 부분의 비율이 달라진다. 곧 전자에 후자에 대한 비율이 증가한다.

 

사회 전체의 자본에 대해 볼 때, 사회 전체의 자본이 증대함에 따라 임금에 할당되는 비율은 누진적으로 감소된다. 그래서 노동자가 남아돌게 된다. 게다가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자가 몰락하여 노동자가 되고 실업자는 증가한다. 그러므로 한쪽의 극(자본가 계급)에서의 부의 축적은 다른 쪽의 극(노동자 계급)에서의 빈곤, 노동고, 예속, 불안, 무지, 도덕적 타락의 축적인 것이다. 물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 자체가 노동자 자신을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고 더욱더 비인간화하며, 거꾸로 착취하는 자본가를 더욱더 강력하게 만든다. 자본이 지배하는 한 이 모순은 계속되고 확대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학대받은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일어나고, 그들에 대한 억압 착취, 그들의 빈곤, 예쏙, 퇴폐가 증대하면 할 수록 그들의 반역도 증대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무덤을 팔 사람(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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