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5
레비나스는 기독교인의 신앙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처음 언급한 신과, 천사를 보내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한 그 신을 믿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정말 종교적인 단계에 있었다면, 그는 아들을 죽이려는 자신을 멈추게 한 천사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고, 계속하여 이삭을 죽여 버렸을 것이다. "초월적인 윤리학"은 마치 살인자들을 그들의 범죄로부터 용서해 주기 위해 생긴 구멍처럼 보이고, 따라서 그것은 수용되기 어렵다.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관점에 대해, 사르트르는 신의 존재에 반대하는 논쟁을 제기한다. 만약에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그것은 감각이 있는 존재가 완전할 수 없다는, 감각에 관한 용어의 의미로부터 뒤따르는 것이다.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는 신이 혼자 힘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의식(감각)이며 또한 본질적으로 하나의 존재로서 하나의 사물이라는 것은, 말에서 모순된다고 언급했다.
사르트르는 아브라함이 불안을 견뎌야 했다는, 키르케고르의 분석에 동의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신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도록 말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강의록인 <실존주의는 인본주의이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을 통해서, 그의 양심이 진정으로 병들게 해야만 한다. 그 말이 부인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포함하는 거짓말을 실천하면서 말이다. 그런 지나친 변장을 통해, 그의 고뇌는 그 자체를 드러낸다. 이것은 키르케고르가 "아브라함의 고뇌"라고 불렀던 고뇌이다. 당신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 명령에 그는 순종했다. 만약에 정말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라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아브라함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희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닥친 사람이면 누구나, 첫째, "말하는 사람이 정말 천사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고, 둘째, "내가 정말 아브라함인가?"라는 의문도 지닐 것이다. 그런 의문을 해소할 증거가 어디 있는가? 망상으로 고통 받는 어떤 미친 여성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요구 사항을 말한다. 그러면 의사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녀는 대답한다. "그는 그것이 신이라고 해요." 그러면 정말 그녀가 말하는 그것이 신인지를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만약 한 천사가 나에게 나타난다면, 그것이 천사임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이며, 만약에 내가 소리를 드는다면, 그 소리가 천국에서 들리는 것으로 지옥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증명할 것이며, 또는 그 소리가 나의 잠재의식이나 병적인 상태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라고 누가 증명하겠는가? 누가 그것들이 나에 대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장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인본주의이다
키르케고르의 시각에서, 아브라함의 확신은 '내면의 목소리'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그 목소리는 실제로 다른 이들이 그 존재를 증명하거나 들을 수 없는 것이다.("문제는 아브라함이 이해받기를 원하자마자 다가온다.") 키르케고르에게, 모든 외부의 "증거"나 정의는 단지 주체의 바깥에 있는 것일 따름이었다. 예를 들어, 영혼의 불멸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증거는, 인간이 지닌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마음에 근거한다.
영향과 평판
초기
키르케고르의 저서들은 그의 사후 수십년이 지날 때까지도 널리 유용하게 쓰이지 못했다.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당시 덴마크 내에 주요한 조직 중 하나였던 덴마크 국교회는, 될 수 있으면 키르케고르의 책을 언급하지 않고 회피하려 했고, 다른 덴마크인들도 그렇게 하기를 권했다. 게다가 독일어나 프랑스어, 영어 같은 주요한 언어권에서 덴마크 언어가 널리 쓰이는 말이 아니어서, 덴마크어 사용자가 아닌 독자들이 키르게고르를 가까이하여 알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첫 번째 학구적인 관심이, 독일어를 덴마크어만큼 잘했던, 그의 동료인 덴마크인 게오르그 브란데스의 활약 덕분에 키르케고르에게 주어졌다. 브란데스는 키르케고르에 관한 첫 공식적인 강의를 했고,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키르케고르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끔 도왔다. 1877년 브란데스는 또한 키르케고르의 철학과 삶에 대한 첫 번째 책을 출간하였다. 희곡작가 헨리크 입센도 키르케고르에 흥미를 갖고, 그의 저서들을 나머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에 소개하였다. 1870년대에 키르케고르 저서 중 일부가 독립적으로 독일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고, 키르케고르 저서 전체에 대한 학문적인 독일어 번역은 191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었다. 이 번역들은 키르케고르가 20세기에 독일, 프랑스, 영국의 지식인과 작가 등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30년대에, 첫 번째 학문적인 영역본이 나왔다. 번역한 사람들은 알렉산더 드루, 데이비드 스웬선, 더글러스 스티어, 그리고 월터 라우리였고,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일하는 찰스 윌리엄이 편집자로 수고했다. 이차적이고 최근에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학문적인 영어 번역본은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 출간하였다. 하워드 홍과 에드나 홍이 감수하였다. 세번쨰 공식적 번역은 쇠렌 키르케고르 연구 센터의 지도로, 55권 분량으로 확대되어 출간될 예정이며, 2009년 이후에 완성되리라 여겨진다.
유신론자이건 무신론자 이건 많은 20세기 철학자와 신학자는, 키르케고르로부터 여러 개념을 끌어오곤 한다. 분노, 절망의 개념이라든가, 개인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철학자로서 키르케고르가 지닌 명성은, 1930년대에 대단했다. 왜냐하면 당시 타오르기 시작한 실존주의 운동이 그를 선구자로서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다. 키르케고르는 루터교 교회의 성인 달력에서 교사로서 11월11일에 기념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그가 죽은 후에 얻을 명성을 예견했고, 그의 책들이 주체에 대한 치열한 탐구로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시대가 필요한 것은 천재가 아니다. - 그들은 항상 넘쳐났다.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순교자, 즉 사람들로 하여금 복종하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그 자신이 먼저 죽기까지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각성이다. 그러므로 미구에 나의 글뿐만 아니라 나의 전 생애까지도, 기계의 흥미를 자아내는 모든 신비로서 연구되고 또 연구될 것이다. 나는 신이 나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결코 잊지 않으며,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바람은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