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4
일기
키르케고르의 일기는 그와 그의 글을 이해하는 데 필수이다. 그는 7000쪽이 넘는 일기를 썼다. 그의 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나 명상, 생각들이 그 일기장에 빼곡히 담겨 있는 것이다. 덴마크어로 기록된 일기의 전체 모음은 13권으로 편집되어 출간되었다. 그 책은 색인을 포함하는 25개의 분리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영문판 편집은 알렉산더 드루가 했고, 1938년에 출간되었다.
그의 일기는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의 키르케고르를 드러내며, 그의 생각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돕는다. 그의 일기가 지닌 형식은 그의 글 중에서 가장 시적이고 우아하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일기를 진지하게 기록했으며, 자신의 일기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나는 결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어느 정도까지 나는 일반 사람들을 나의 친구로 삼아 왔다. 하지만 현재 내가 일반 대중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서 보면, 나는 다시 한번 후손들을 나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삼아야만 한다. 누군가에 대해서 웃고 있는 똑같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의 일기는 키르케고르의 전매특허인 수많은 경구의 원천이다. 다음에 나오는 구절은 아마도 키르케고르의 일기 중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으로, 실존주의자 연구에서 항상 중요하게 인용된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이며, 나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 일기가 그의 삶과 사사의 여러 측면을 명확하게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키르케고르는 많은 부분을 밝히지 않았다. 사상의 갑작스러운 변화, 반복되는 글쓰기, 그리고 특별한 구절의 전환은, 독자를 정돈되고 체계적인 독서의 길에서 내팽개쳐 버리려고 그가 사용하는 많은 잔재주 중 일부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일기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미래에 그의 일기가 중요해지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1849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덴마크에서 오직 죽은 사람만이 상황을 지배한다. 부도덕함, 질투, 뒷담화, 평범화은 모든 최고의 공간에 존재한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의 삶이 남긴 결과는 비범한 것이 될 것이다. 일기들에서 부주의하게 간단히 몇작 적어둔 많은 것이, 매우 큰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와 화해하게 될 것이고, 나를 인정할 수도 있고 내가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키르케고르와 기독교계
위에서 언급한 대로, 키르케고르는 말년에 이르러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실체로서의 기독교계와 기독교를 비판했다. 19세기에 대부분의 덴마크인은 덴마크의 시민이자 필수적으로 덴마크 국립교회의 구성원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국립교회 연합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킨다고 보았다.
그이 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다음과 같다. "교회 모임은 무의미하다." 모임의 사상은 개인들을 어린아이로 유지시킨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신과 맺는 관계에서 책임을 지고 주도권을 갖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개인고, 여기에 있는 단독자 이다."
"기독교계는 세속화되고 정치화되어 왔다."
교회가 국가에 의해 조종되어온 이래로, 키르케고르는 국가 교회의 관료적인 임무가 구성원의 숫자를 늘리고, 구성원의 복지를 감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밑바탕에는, 좀 더 많은 구성원이 모여들수록 성직자는 더 큰 힘을 갖게 된다는 부패한 생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임무는 전체가 아니라 개인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텅 빈 종교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적 구조로서의 국가 교회는, 개인에게 무례하고 해를 끼친다. 왜나하면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모른 채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교회는 종교 그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지 않는 "믿는 사람들" 즉 사람들의 "돼지 떼 정신"에 따라서, 기독교를 단지 사교계의 전통 정도로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에 교회가 국가로부터 자유롭다면, 모든 것이 좋다. 나는 즉각적으로 이 상황을 적합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교회가 정치적으로 해방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무슨 의미에 의해서, 어떠한 방법으로? 종교적 운동은 종교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가짜다! 결과적으로 피를 흘리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해방은 고난을 통해서 와야만 한다. 그것을 구입하는 데 지불해야 할 값은 정신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고난 없이 교회가 세속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해방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전체 세계의 조화를 위한 인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 세계에서 인내는 무관심과 같고, 그것은 기독교에 반대하는 가장 끔찍한 공격이다. 국가적으로 설립된 교회의 교리와 그것의 조직은, 둘 다 정말 매우 좋다. 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것들은 정말 가증스럽다."
기독교 교회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는 모습에서, 키르케고르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철학자의 등장을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묻는다. 우리가 신약 성서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는 기준으로 삼아 행동하는 것을 지속할 때, 그것은 무슨 뜻인가? 신약성서의 생각은 삶에 대해서 뒤떨어진 것인가? 게다가 이 사건들의 상태가 드러내는 거대한 불균형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에 이러한 전환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 종족은 기독교에서 벗어나고 있다."
비판
20세기에 이루어진 키르케고르에 대한 유명한 철학적 비판에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것이 포함된다.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무신론적 철학자들과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불가지론자 철학자들은, 대부분 키르케고르의 철학적 견해를 지지했지만, 그의 종교적인 견해는 거부했다.
아도르노가 키르케고르의 철학에 가한 비판은, 원래 키르케고르의 의도보다는 덜 신실한 것이었다. 최소한 아도르노의 비평 중 하나인 그의 책인 <키르케고르: 미학의 구조>는 "키르케고르의 대한 책 중에서 가장 무책임한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아도르노는 키르케고르의 익명 저서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했고, 그런 이해에 근거하여 키르케고르의 전체 철학을 구성하는 바람에, 키르케고르의 익명 저서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했고, 그런 이해에 근거하여 키르케고르의 전체 철학을 구성하는 바람에,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논리적인 일관성이 부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 이해 방식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그가 쓴 작품의 주인공인 오셀로를 혼동하거나, 도스토옙스키와 그가 쓴 소설<죄와 벌>의 주인공이 ㄴ라스콜리니코프를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착각과 같은 것이다. 또 다른 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아도르노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키르케고르의 모음집에 대한 신뢰할 만한 해석이나 번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비나스가 키르케고르에게 가한 비판의 주요한 내용은, 그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단계들에 집중하였다. 특히 <공포와 전율>에 대해서 그러했다. 레비나스는 신앙의 도약을 비판했는데, 그가 보기에 이러한 유리적인 매달리기와 신앙으로의 도약은 폭력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폭력은, 실존이 믿음의 영역인 종교적인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 윤리적인 단계를 포기할 때 시작된다. 그러나 믿음은 더 이상 외부적인 정당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조차, 그것은 의사소통과 고립이 결합되었고, 따라서 거기에서 폭력과 고난이 유래하였다. 그것은 윤리적인 현상을 격하시켜 이차적인 지위를 주는 것의 유래가 되었고, 존재의 윤리적인 기초를 멸시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니체를 불러들이고, 니체를 거치면서 도덕관념이 없는 현대철학으로 완성되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 실존과 윤리